1985년 9월, 미국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역사적인 외환 정책 조율이 이뤄졌다. 이 회의는 미국,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 등 주요 5개국(G5)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여 체결한 협정으로, 훗날 ‘플라자 합의’라 불리게 되었다. 당시 미국은 막대한 무역적자와 경기 둔화에 직면해 있었고, 초강세 달러는 자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며 실업률 증가로 이어지고 있었다. 미국의 경제 구조와 정책은 수출을 억제하고 수입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고, 이에 따라 글로벌 무역 불균형이 심각해진 상황이었다.
왜 달러 절하가 필요했을까
강달러 정책은 미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수출은 감소하고 수입은 급증하면서 무역수지는 악화일로였고, 특히 일본과 서독과의 무역 격차는 미국 정치권과 산업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반면, 일본과 유럽은 미국으로의 수출로 막대한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고, 이는 글로벌 차원에서 무역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국은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방식으로 수출경쟁력을 회복하고자 했고, 주요 5개국과의 협의를 통해 외환시장에 공동 개입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G5의 공동 행동, 플라자 합의의 핵심
플라자 합의의 본질은 미국 달러의 고평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공동으로 개입하겠다는 내용이다. G5 국가는 각국 중앙은행을 통해 달러를 매도하고 자국 통화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하기로 약속했다. 더불어 미국은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고 저축률을 높이기 위해 정책 조정에 나서기로 했으며, 일본과 서독은 내수를 진작시키고 미국산 제품의 수입을 확대하기로 하며 국제적 정책 공조를 다짐했다. 이 협약은 국제 금융 질서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인 환율 조정을 시도한 사례로 기록된다.
급격한 환율 변화가 불러온 파장
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 가치는 2년 사이 약 50% 가까이 하락했다. 달러당 240엔 수준이던 환율은 120엔까지 떨어지며 엔화는 급격히 강세를 보였다. 이 같은 환율 변화는 일본의 수출기업에 직격탄이 되었고, 일본 정부는 내수 부양을 위한 초저금리 정책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풍부한 유동성과 저금리는 자산 시장의 과열로 이어졌고, 부동산과 주식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며 일본의 버블 경제를 불러왔다. 이러한 흐름은 결국 1990년대 초반 자산 가격 붕괴로 이어지며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 불황의 원인을 제공했다.
달러 패권은 유지되었지만…
달러는 플라자 합의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가치가 하락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여전히 국제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했다. 미국의 무역수지가 일부 개선되었지만, 근본적인 소비 중심의 경제 구조나 저축률 저하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플라자 합의 이후에도 미국의 재정적자는 지속되었고, 이후 루브르 합의와 같은 후속 조치들이 등장했지만, 글로벌 경제는 여전히 미국 중심의 달러 체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유지되었다. 동시에 플라자 합의는 국제적인 환율 조정과 경제정책 공조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며, 훗날 G7, G20, IMF 협력체제 형성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세계 경제 정책 공조의 이정표
플라자 합의는 달러 강세에 따른 글로벌 불균형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첫 공식적 대응이었고, 선진국들이 공동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 협약은 외환시장 안정화, 통화 가치 조절, 정책 조율의 중요성을 각국에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급격한 정책 변화가 한 국가의 금융시장을 얼마나 왜곡시킬 수 있는지도 보여준 사례였다. 플라자 합의는 오늘날까지도 국제 경제 협력과 위기 대응의 선례로 평가되며, 글로벌 금융질서의 전환점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